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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년 가양주 ‘호산춘’을 이어온 황씨고집

500년 가양주 ‘호산춘’을 이어온 황씨고집

등록 2015.01.12 15:13

홍석천

  기자

장수황씨 사정공파 22대 종손 황규욱 선생과 종부 송일지 여사

왠지 장인에게는 ‘고집’이라는 단어가 거의 동일어처럼 따라온다. 한치의 빈틈이나 흐트러짐이 있으면 안된다는 고집스러움과 장인정신이 세계적인 명품을 만드는 원천이 되기 때문일 것이다.

문경에 자리잡고 있는 황희 정승의 후손 중 ‘황씨고집’이라는 말을 들어가며 문중의 가양주를 지키고 있는 사람이 있다.

바로 장수황씨 사정공파 22대 종손 황규욱 씨다. 호산춘은 현재 종손인 황규욱 선생(64)과 송일지 종부, 그리고 종손의 아들이 함께 빚고 있다. 종부가 무형문화재 호산춘 술빚기 기능보유자이다. 종손은 전수조교이고, 아들이 전수자다.

◆신선이 탐낸 술 ‘호산춘’

호산춘은 ‘신선이 탐할 만한 술’이라 해 ‘호선주(好仙酒)’라고 불리기도 한다. 보통 술 이름에는 ‘주(酒)’자를 쓰지만 드물게 ‘춘(春)’자가 붙는 술도 있다. 이른바 ‘춘주’는 맛과 향 등이 뛰어난 귀한 술의 또다른 이름인 것이다.

‘춘’자가 붙은 술로 호산춘 외에도 약산춘(서울), 벽향춘(평양) 등이 있었지만 지금은 호산춘 외에는 전해지는 술이 없다고 한다.

황규욱 선생은 “증조할머니, 고조할머니도 가양주를 담근 사실이 확실하니 호산춘의 역사는 최소 200년은 넘는다"면서 “입향조 때부터라면 500년 정도까지 역사가 거슬러 올라가게 된다”고 말했다.

호산춘은 멥쌀과 찹쌀, 솔잎, 생약재, 누룩을 사용해 빚는다. 밑술과 덧술이라는 두 번의 숙성 과정을 거친다. 물론 물을 전혀 타지 않는 원액 그대로의 청주다.

◆돈보다 500년의 명예 지켰다

한때 황씨 집안은 6촌 내에서 과거에 급제한 진사가 8명이나 되고 모두 천석지기여서 ‘8진사 8천석’으로 불리기도 했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그 많던 재산이 축나기 시작하는데 일등공신이 바로 호산춘이었다.

황 선생은 “집안에 손님이 끊이지 않은데다 접대하기 위해 끊임없이 술을 빚다 보니 가세가 기우는 것이 보일 정도였다”고 웃으며 말했다.

그는 1991년 전통주 제조면허를 획득한 전통주 1세대다. 당시 함께 면허를 딴 술들이 면천두견주 함양국화주 경주법주 한산소곡주 등이다.

하지만 황규욱 선생은 호산춘과 돈을 결부시키는 데는 소질이 없다. 정성스레 술을 빚지만 판매에는 신경을 쓰지 않는 것이다.

호산춘에 대한 ‘황씨 고집’ 때문이다. 술 팔아 부자가 될 생각이 없다는 그는 술의 질을 유지할 수 있는 소량 생산만 고집한다.

그는 “술을 이윤의 목적으로 만드는 것이 아닌 ‘가치’를 위해 만들어야 한다”면서 “최고의 품질을 가진 최고의 술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반드시 살아남는다는 것이 확고한 신념”이라고 말했다.

그의 유별난 자부심은 다음 일화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수십년 전 청와대에서 국빈 환영 만찬주로 쓰겠다며 호산춘을 보내달라고 주문한다.

그런데 황규욱 선생의 대답은 ‘no 였다. 술을 가져다 줄 수는 없으니 필요하면 직접 가져가라는 것이었다. 실제로 며칠 후 청와대에서 사람들이 직접 와 술을 가져갔다고 한다.

한 주류회사에서 호산춘 브랜드를 활용해 대중화하자는 제의도 있었지만 거절하기도 했다.

◆또다른 도약을 준비하는 500년 전통

하지만 황규욱 선생도 시대의 큰 흐름은 비켜갈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전통과 가문에 대한 자부심과 함께 변화하는 세상과의 조화도 필요하다는 것을 느끼고 있다.

현재 호산춘은 새로운 발돋움을 준비하고 있다. 전통의 술맛을 그대로 재현하면서 위생과 생산과정의 균일성을 담보할 수 있는 방안을 찾은 것이다.

바로 호산춘은 경상북도와 문경시의 지원으로 최신 제조 시스템을 갖춘 ‘술도가(호산춘과 공장이라는 말은 어울리지 않는다)’를 신축한 것이다.

호산춘이 이같은 도약을 준비할 수 있는 계기는 바로 젊은 피가 가세했기 때문이다. 황규욱 선생의 아들, 즉 차종손인 황수상씨가 부친의 권유로 가양주 가업을 잇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 대표 주류회사에 들어가 이론과 실기를 배운 뒤 돌아와 부모를 도우며 술을 빚고 있다. 안동대 대학원에서 미생물학을 전공하기도 했다. 12월 설비가 본격 가동되면 기존의 술독 생산방식보다 수십배는 많게 생산이 가능해진다.

생산량이 적어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지 못했던 부분을 충족시켜줄 것으로 내다봤다. 황수상 씨는 “500년의 전통 종가의 명주를 이어나가는 것은 물론 우리나라 전통주인 문경 호산춘을 세계의 다른 나라에도 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예전에는 종택에서만 구입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택배로도 호산춘을 받을 수 있는 것도 작은 변화 중 하나다. 구입은 홈페이지를 통해 주문하면 된다.

대구 경북=홍석천 기자


뉴스웨이 홍석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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