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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수의견’, 진실 같은 거짓의 소름끼치는 ‘자기모순’

[무비게이션] ‘소수의견’, 진실 같은 거짓의 소름끼치는 ‘자기모순’

등록 2015.06.19 14:45

수정 2015.06.19 15:53

김재범

  기자

 ‘소수의견’, 진실 같은 거짓의 소름끼치는 ‘자기모순’ 기사의 사진

이 얘기는 사실이 아니다. 아니 다시 말하면 거짓을 가장한 사실이다. 우리 주변에서 분명 어떤 식으로든 일어나고 있는 사실이다. 하지만 결코 사실은 아니다. 앞뒤 맥락 자체가 어떻게 해석을 해도 말이 되고 또 말이 되지 않는다. 말장난 같은 이 단 몇 개의 문장은 영화 ‘소수의견’이 2년 만에 세상의 빛을 보게 된 과정의 숨은 비밀과도 결코 무관하지 않다. 말이 안 되는 이 영화가 어느덧 말이 될 수밖에 없어진 이 세상이 가장 두려워하고 부끄러워할지 모를 얘기가 됐기 때문이다.

영화 시작과 함께 이 얘기는 허구임을 분명히 한다. 하지만 이미 우리는 그 허구 속에 사실이 숨어 있음을 알고 있다. 그 사실이 진짜 사실일지 아닐지에 대한 판단은 각자의 몫일뿐이다. 그 안으로 들어가겠다. 배경은 우리가 기억하고 있는 ‘그 사건’과 너무도 닮아 있다. 아니 굳이 그 사건을 떠올리지 않아도 우린 너무도 비슷한 상황을 목도하고 있어왔다.

 ‘소수의견’, 진실 같은 거짓의 소름끼치는 ‘자기모순’ 기사의 사진

서대문구 북아현동 뉴타운 재개발 구역이다. 포크레인이 집을 부수고 있다. 경찰과 경찰 같은 사람들(?)은 철거민들을 내쫓기 위해 폭력을 행사한다. 법이 용인한 폭력인지 아닌지는 모른다. 법은 지키려는 자들(철거민)을 외면하고 빼앗으려는 자들을 응원한다. 지키려는 자들은 그저 살고 싶다고 말할 뿐이다. 지키고 빼앗으려는 싸움 속에서 두 명의 목숨이 사라진다. 철거민 박재호(이경영)의 16세 아들 박신우가 첫 번째다. 두 번째는 20세 의경 김희택(노영학)이다. 두 사람은 서대문구 북아현동 재개발 구역 내 철거 현장에서 목숨을 잃었다. 법은 심판을 한다. 박재호를 의경 살인자라고 부른다. 하지만 박재호는 정당방위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자신의 아들을 경찰이 죽였다고 주장한다. 경찰은 소년의 살해범으로 현장에 투입된 용역깡패를 붙잡았다.

한 남자가 자신의 아들을 죽인 경찰을 죽였다. 경찰은 그 남자의 아들 살해범으로 깡패를 붙잡았다. 소년의 아버지는 아들 살해범은 경찰이라고 주장한다. 경찰은 의경 살해범으로 소년의 아버지를 지목한다. 자 질문이다. 당신이 법이라면 누구의 손을 들어주겠나. 누가 피해자고 누가 가해자인가.

 ‘소수의견’, 진실 같은 거짓의 소름끼치는 ‘자기모순’ 기사의 사진

‘소수의견’은 우리가 알고 있는 그때 그 사건을 모티브로 따와 전개를 펼친다. 참사라 불린 그 사건 속에서 죽은 자들은 지금까지 억울한 죽음을 호소하고 있다. 반면 그들을 죽음으로 몰고 간 누군가는 지금도 사과 한 마디 안하고 있다. ‘소수의견’은 이 질문을 관객들에게 돌렸다. 대체 누가 잘못한 것인가. 힘이 없음에도 대항한 지키려는 자들이 잘못인가. 아니면 그들에게 삶을 빼앗으려 힘을 과시한 권력의 잘못인가.

단순한 이분법적 명제의 이 질문은 가해자와 피해자 논리의 해석을 요구하는 법정 드라마로 흘러가게 된다. 법은 힘이 있거나 없거나를 따지지 않고 누구에게나 공평한 논리여야 한다. 하지만 ‘소수의견’ 속 법의 논리는 말 그대로 소수의 논리 안에서만 존재하고 평가 받는다. 국민참여재판이란 다수의 논리를 끌어 들여 ‘소수’의 의견 속 논리의 오류를 보완하려 하지만 효력이 없는 권고 사항이라고 영화 속 판사는 명시한다. 영화 속 법정 자체가 모순의 논리를 합리화시키는 오류의 얼굴인 것이다.

 ‘소수의견’, 진실 같은 거짓의 소름끼치는 ‘자기모순’ 기사의 사진

결과는 우리의 예상과는 전혀 달리 힘이 없기에 잘못을 저지른 ‘소수’의 책임으로 돌아간다. 영화적 환상과 장치 그리고 ‘시네토피아’를 기대한 당신이라면 완벽하게 배신을 당할 뿐이다. ‘소수의견’ 속에선 그런 모든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사실 ‘소수의견’의 진짜 얼굴은 힘없는 철거민이 결국 법의 심판을 받게 되는 결과물의 피 끓는 분노가 아니다. 우리의 기억 속 그 사건의 충격파가 오롯이 남아 있는 지금, 그 사건의 원론적 배경으로 시각을 옮겨 영화는 묻는다. 그리고 질문한다. ‘대체 이들을 죽이고 죽게 만든 보이지 않는 그것이 무엇인가’라고.

 ‘소수의견’, 진실 같은 거짓의 소름끼치는 ‘자기모순’ 기사의 사진

영화는 표면적으로는 철거민 그리고 철거와 재개발 과정 속에 얽힌 이권 개입에 연루된 권력의 이면을 조명한다. 변호사 기자 언론 그리고 검사 판사 경찰 국회의원 재개발 시행업체 그리고 결국에는 권력의 꼭대기까지다. 이들 모두는 힘을 놓고 자신만의 밥상을 지키기 위해 아귀처럼 달려들고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갈 궁리만 한다. 깡패를 회유하는 검사의 치졸한 협박, 검찰을 압박하는 국선변호사를 좌절시키기 위한 학연과 지연의 인맥 싸움, 법치주의를 무색하게 만드는 검사와 판사의 부패한 공정성. 심지어 힘없는 철거민의 편에서 싸움을 거들던 국선 변호사와 그의 선배조차도 돈으로 증인을 매수해 힘과 싸움을 벌여야만 하는 모습, 이들을 서포트하던 기자의 무책임한 특종 보도 등은 우리 사회의 구조적 병폐와 모순의 집단적 패닉 상태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일부분일 뿐이다.

‘소수의견’ 속 유일한 악으로 불리는 검사 ‘홍재덕’(김의성)은 선의 그림자 윤진원(윤계상)에게 서늘한 경고로 모순이라 불리는 지금의 시대를 설명한다. “누군가는 국가를 위해 희생하고, 누군가는 또 국가를 위해 봉사를 한다. 난 봉사를 했을 뿐이다”라고.

 ‘소수의견’, 진실 같은 거짓의 소름끼치는 ‘자기모순’ 기사의 사진

왜곡된 자기 합리화의 정점에 선 지금의 권력이란 이름은 다수의 의견을 묵살한 채 소수의 의견이 돼 사실이 아닌 거짓을 사실로 만들어 가고 있다.

‘소수의견’은 거짓이고 완벽한 픽션이다. 하지만 ‘소수의견’ 속 거짓은 지금도 현실 세계에선 사실로 살아 숨을 쉬고 있다. 이 영화는 그것을 소름끼치게 통찰하고 꿰뚫었다. 물론 꿰뚫림을 당한다 한 들 피 한 방울조차 나오지 않을 것을 알기에 더욱 서러울 뿐이다.

 ‘소수의견’, 진실 같은 거짓의 소름끼치는 ‘자기모순’ 기사의 사진

영화 ‘소수의견’은 사실이면서 거짓이고, 거짓이면서 사실이다. 개봉은 오는 24일.

김재범 기자 cine517@

뉴스웨이 김재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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