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의 정유사 '횡재세' 압박···"포퓰리즘의 끝판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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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 바뀔지 모르는 국제유가 회계상 이익 '함정'
정치권서 '역대급 실적' 정유사 초과이익 환수 요구
영국 등 일부 유럽선 실시중, 미국도 법안발의 추진
정유4사, 올 1분기 영업익 4.8兆···전년 총 실적의 70%
국내 업체들, 원유 전량수입 의존해 고유가 부담 높아
형평성 논란부터 수급불균형 심화 우려, 투자 위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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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정유업계가 난감한 상황에 봉착했다. 정치권을 중심으로 정유사들의 초과이익을 환수해야 한다는 주장이 빗발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작 당사자들은 '현실성 없는 무리한 요구'라며 반발하고 있다. 국제유가가 하락할 경우 재고 관련 이익은 다시 손실이 되는 만큼 '회계상 이익'은 함정이라는 입장이다. 최근의 국내 정유사의 경영실적은 주로 유가상승에 따른 기존 재고 관련이익으로 인한 개선이다. 높은 정제마진 또한 원유공급단가(OSP)를 감안한 실질 정제마진은 그리 높지 않은 수준이다.

'횡재세(Windfall Profit Tax)'란 뜻밖의 횡재로 얻어진 과도한 이윤에 세금을 거두는 것을 말한다. 횡재세가 처음 거론된 것은 1997년 영국에서다. 당시 영국은 노동당이 재집권하면서 1980년대 보수장 정권에서 헐값에 민영화된 공기업들에 대해 횡재세를 부과했다. 과도한 시세차익을 세금으로 다시 환수하겠다는 취지다. 현재 영국은 석유 및 가스 업체들에 25% 횡재세를 부과하고 있다. 다만 이 세금은 한시적이다. 에너지 요금이 내려가면 단계적으로 폐지한다는 단서이다. 올가을 에너지 요금 추가 인상이 예고되자 지난 6월부터 에너지 기업 초과이윤세를 기존 40%에서 65% 늘렸다. 이를 재원 삼아 가계에 150억 파운드(약 24조원)를 지원하기로 했고 초과이윤세 도입으로 영국 정부는 12개월 동안 50억 파운드(약 8조원)의 재원이 마련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미국은 횡재세 논란의 중심에 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지난 6월 연설에서 "엑손모빌(석유회사)은 지난해 하느님보다 더 많은 돈을 벌었다"고 비판했다. 미국 정부는 초과이윤이 10%가 넘는 석유기업에 대해 세금 21%를 추가로 부과하는 법안을 추진하고 있는 중이다. 과거 미국은 1980년 고유가시 생산증대 및 가격 안정을 위해 석유기업을 대상으로 횡재세를 시행했다. 하지만 역효과의 후폭풍에 시달렸다. 산업체 비용증가, 생산감소와 수입증가를 초래하며 역효과로 이어진 사례가 있다. 2006년 고유가로 떼돈을 번 미국 석유재벌들에게 횡재세를 추징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하지만 조지 부시 당시 대통령은 초과이익 환수제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강하게 밝혔다. 2007년 횡재세 부과 입법발의됐지만 미국 의회조사국(CRS)도 유가상승에 따른 소비자부담 증가, 미국 정유사의 원유생산 감축 초래 등 부정적 영향 지적했고 청문회 실시 결과 공화당 반대로 부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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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중공업이 건조한 수에즈막스(Suezmax) 급 원유운반선. 사진=현대중공업 제공
최근 들어서는 전 세계적으로 횡재세에 대한 우호적인 여론이 형성되는 분위기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기름값이 폭등하면서 일부 유럽 국가는 이미 에너지 기업을 상대로 횡재세를 걷고 있다. 영국은 석유 및 가스업체에 한시적으로 25%의 초과이윤세를 부과하고 있고, 이탈리아는 작년 10월부터 올해 3월까지 500만유로(한화 약 67억원) 이상의 수익을 낸 기업에 횡재세를 물리고 있다.

국내 정치권에서도 '역대급 실적'을 쓴 국내 정유사들에 세금을 걷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김성환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원회 의장은 지난달 21일 "고통분담 차원에서 정유사의 초과이익을 최소화하거나, 기금 출연으로 환수하는 방안을 마련할 것이다"고 언급했다. 박홍근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도 "고유가 상황으로 인해 정유업계는 최대실적을 달성했다"면서 업계의 고통분담을 요구했다. 여당인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당대표 직무대행 겸임)도 지난달 23일 "정유사들이 고유가 상황에서 혼자만 배 불리려 해선 안 된다"고 발언했다.

국내 정유 4사는 지난해 총 7조원대의 영업이익을 올렸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확산한 2020년 총 5조원이 넘는 최악의 적자를 기록했지만, 1년 만에 흑자전환에 성공한 것이다. 특히 올해 1분기만에 전년 영업이익의 70%에 육박하는 4조8000억원을 달성했다. 이 기간 SK이노베이션은 1조6491억원의 영업이익을 냈다. 에쓰오일(S-Oil)은 1조3320억원, GS칼텍스는 1조812억원, 현대오일뱅크는 8045억원으로 집계됐다. 이들 업체는 2분기에도 호(好)실적 행진을 이어갈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여기엔 숫자의 함정이 있다. 올해 1분기 정유업계 영업이익 4조원중 약 40%가 재고관련이익으로 유가하락시 재고관련손실로 이어질 수 있다. 즉 산유국 석유기업의 상류부문 수익과는 달리 숫자상 이익에 불과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이밖에 최근 정제마진이 배럴당 20달러 내외이며 사우디가 아시아 국가에 원유를 판매할 때 붙이는 프리미엄인 OSP(Official Selling Price)가 올해 5월 기준 배럴당 9~10달러에 이르고, 원유수입운임 등 관련 제비용 상승으로 손익분기점(BEP) 마진도 배럴당 5달러 내외에 달하여 실질 정제마진은 그리 높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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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석유기업은 2014년과 2020년 대규모 적자 및 손실을 기록할 당시 정부의 지원 및 적자 보전이 없었던 상황에서도 일시적 고수익에 대해서만 횡재세를 부과한다면 조세 형평성에 위배되며 투자불확실성 초래로 생산활동 위축 우려할 것이다. 사진=한국석유공사 제공
정유사의 핵심 수익성 지표인 정제마진은 석유제품 가격에서 실제 원유 구매비와 수송·운영비 등 각종 비용을 제외한 금액이다. 물량 전부를 수입하는 국내 정유사의 정제마진 손익분기점은 통상 배럴당 4~5달러로 파악된다. 지난달 넷째주 싱가포르 복합 정제마진은 배럴당 29.5달러로, 관련 통계를 시작한 2000년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을 찍었다. 정유사들은 국제유가 급등에 대비해 원유를 미리 사뒀고, 재고 가치가 높아지면서 이익이 늘어났다. 또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석유제품 수요를 공급이 따라오지 못하면서 정제마진은 치솟았다.

더욱이 코로나19 리오프닝(경제활동 재개)에 따라 국가간 이동 제한이 대부분 풀리면서 항공유 수요가 폭증하고 있다. 휴가철을 맞아 휘발유와 경유 등 수요도 늘고 있다. 하지만 공급은 여전히 이를 따라오지 못한다. 여기에 국제사회의 러시아산 원유 제재와 글로벌 정제설비 축소 현상이 지속되고 있다. 타이트한 원유 수급이 당분간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한 만큼, 정제마진 강세에 따른 수혜도 클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국내 정유업계와 횡재세를 부과하는 타 국가간 구조적인 차이점을 간과할 수 없다. 국내 정유사는 비산유국임에도 세계 5위 규모의 우수한 정제능력을 갖추고 있다. OECD국 대비 80%의 낮은 가격(세금 제외 가격)으로 안정적으로 석유제품을 공급함으로써 국내가격 안정화 기여하고 있다. 특히 지난해 기준 국내 석유제품가격은 OECD 국가 중 가장 낮은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과 유럽연합(EU) 등은 원유를 직접 시추하고 판매한다. 개발비에서 판매비를 제외한 비용이 모두 수익이다.

반면 국내 정유사들은 해외를 전량 수입하며 정제해서 팔기 때문에 고유가 부담이 고스란히 반영돼 있다. 원유를 수입하던 시점부터 유가가 오른 만큼, 단순 숫자상으로만 마진이 높은 것처럼 느껴지는 일종의 '착시'라는 설명이다. 국제유가가 하락할 경우, 재고를 비싸게 사둔 셈이 되기 때문에 재고 관련 이익은 즉시 손실로 바뀌게 된다. 실제 지난 1분기 국내 정유사가 거둬들인 영업이익 중 약 40%가 유가 상승에 따른 재고 관련 이익으로, 손실이 나면 다시 반납해야 한다.

시장 논리로 접근하더라도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비판이 나온다. 정유업계 한 관계자는 "정유사들은 2010년 중반대부터 장기 불황에 빠졌지만, 정부 차원의 어떠한 지원이나 손실보전이 없었다"면서 "특히 코로나19 사태로 정제마진이 마이너스까지 내려가면서 재고 관련 손실이 막대했다. 이제와서 수익을 나누라는 것은 황당한 요구"라고 지적했다. 명확한 근거와 기준이 없다는 점은 논란을 더욱 키우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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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정제마진이 배럴당 20달러 내외이며 사우디가 아시아 국가에 원유를 판매할 때 붙이는 프리미엄인 OSP(Official Selling Price)가 올해 5월 기준 배럴당 9~10달러에 이르고, 원유수입운임 등 관련 제비용 상승으로 손익분기점(BEP) 마진도 배럴당 5달러 내외에 달하여 실질 정제마진은 그리 높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사진=한국석유공사 제공
정유사뿐만 아니라 고금리와 이자로 높은 수익을 내는 금융권부터 반도체 등 다른 제조업체에도 횡재세를 부과해야 한다는 반론이 적지 않다. 기업을 상대로 강제 세금을 매기는 것은 자유시장경제 원리와도 맞지 않는다는 주장도 있다. 최악의 경우, 정유사들이 이익률을 낮추기 위해 생산을 줄일 가능성도 존재한다. 공급과 수요 불균형이 완전히 깨지면서 에너지 제품 가격은 더욱 높아질 수밖에 없고, 도리어 민생경제의 어려움이 가중될 것이란 우려다. 정유사들은 반(反)시장적인 정책에 대응하기 위해 설비나 사회공헌 등 기존 투자를 위축할 수도 있다.

업계 관계자는 "일시적 호황에 세금을 물린다는 발상 자체를 이해하기 어렵다. 산업적 특성과 이해도가 충분하지 않은 상태에서 '돈을 많이 벌면 세금도 많이 내라'는 식의 원론적인 접근은 지양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이어 "국내 석유기업은 2014년과 2020년 대규모 적자 및 손실을 기록할 당시 정부의 지원 및 적자 보전이 없었던 상황에서도 일시적 고수익에 대해서만 횡재세를 부과한다면 조세 형평성에 위배되며 투자불확실성 초래로 생산활동 위축 우려할 것이다"고 덧붙였다.

윤경현 기자 squashkh@
이세정 기자 s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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