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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삼성동 트레이드 타워···"새우가 고래 삼켜" 무명 중소건설사 기명철 회장이 인수

부동산 건설사 랜드마크로 보는 건설社 흥망성쇠|극동건설

삼성동 트레이드 타워···"새우가 고래 삼켜" 무명 중소건설사 기명철 회장이 인수

등록 2023.01.30 08:52

수정 2023.01.30 10:08

김소윤

  기자

삼성동 최고층 건물···한국수출실적 모티브로 계단식 건설1947년 김용산 창업주의 대영건설사가 모태, 1998년 해체법정관리 이후 가까스로 세운건설에 매각, 기명철 회장이 오너법정관리 건설사들 싼값에 인수하며 사세 확장···DL맨 다수 포진

삼성동 트레이드 타워···"새우가 고래 삼켜" 무명 중소건설사 기명철 회장이 인수 기사의 사진

서울시 강남구 삼성동에 건설된 마천루인 '삼성 트레이드타워'는 코엑스(COEX)로 대표되는 한국종합무역센터 부속 건물인 동시에 가장 높은 건물이다. 지상 55층, 지하 2층짜리 건물인 트레이드타워는 1984년 착공해 약 4년 만인 1988년에 완공했다. 완공 당시 여의도에 위치한 63빌딩(249m)에 이어 국내에서 두 번째로 높은 마천루였다.

트레이드 타워는 수주전 일화부터가 유명하다. 시공 당시 무역협회가 시공사를 선정하기 위해 도입한 입찰방식부터 남달랐다. 국내에 잘 알려지지 않은 '코스트피'(cost fee) 방식을 도입한 것이다. 통상적인 일반적인 입찰방식은 총공사비를 가장 낮게 써낸 업체가 낙찰 받는 최저가낙찰방식으로, 시공계획과 그에 따른 공사비를 제출하면 이를 검토해 현실적이고 합리적인 제안을 한 업체를 선정한다. 그런데 무역협회가 시도한 코스트피 방식은 예정 공사비가 먼저 제시되고 시공사가 챙겨갈 이윤을 두고 경매를 벌이는 방식이다. 즉 이윤을 더 적게 써낸 업체가 낙찰 받게 된다.

결국 트레이드타워를 낙찰받기 위해 극동건설은 이윤 1원을 투찰했다. 다른 업체들은 30억~70억원을 제시했고 한 업체는 10억원을 투찰했으나 낙찰은 1원을 제시한 극동건설에게 돌아갔다. 당시 예정 공사비는 건물이 513억원, 토목공사비와 이윤을 합쳐 87억여원으로 총 600억원 규모였는데도 말이다.

극동건설은 고층빌딩 수주 실적을 위해 사실상의 손실을 감수하고 뛰어든 것이었다. 충격의 이윤 1원을 제출해 수주에 성공했지만 이는 훗날 신의 한수가 됐다. 이후에 말레이시아 페트로나스 트윈 타워를 삼성물산이 수주하려 했을 때, 발주처는 50층 이상 고층건물 시공경험이 있는 건설사를 요구했다. 삼성물산은 이 건물을 건설한 극동건설이 조건에 부합하다 보니 컨소시엄을 이뤄서 입찰에 성공했다. 만일 극동건설이 당시 무역센터 수주실적이 없었다면 삼성물산은 해외 건설사와 컨소를 이루던가, 아예 페트로나스 타워 수주 자체를 못했을 것이다.

'충격의 이윤 1원' 이라는 수주 일화를 남긴 극동건설은 1947년 4월 김용산 창업주가 세운 대영건설사가 모태다. 6·25 전쟁 휴전 이전인 1953년 4월에 주식회사로 전환하며 현재의 상호로 변경했다. 이후 건설경기 호경기를 타며 차차 성장해 극동호텔, 대연각호텔 등을 각각 합병하고 1971년 대만 고속도로 공사에 참여해 해외 진출을 시도하며 고속 성장을 해왔다. 그러나 대연각호텔 화재로 타격을 입었다.

그러다가 1973년 제 1차 오일쇼크 후 불어닥친 중동개발 붐으로 회생했다. 1975년에는 사우디아라비아 듀바-알바드 토목공사를 시초로 중동 개발현장에 진출하게 된 계기가 됐다. 다음해에는 한국거래소에 상장했고, 1986년에는 국제그룹 계열사였던 국제상사 건설부문과 동서증권을 인수하는 데 주력했다. 2년 후인 1988년에는 앞서 언급했던 삼성동의 트레이트 타워를 세우며 고층빌딩 수주 실적을 쌓았다. 이후 삼성물산과 컨소를 이루며 수주 곳간을 탄탄하게 채워넣으며 전성기를 이루는 듯 했다.

이후에 불어닥친 1997년 외환위기는 극동그룹에게 비극을 안겨주게 됐다. 그룹이 해체하게 됐으며 극동건설마저도 법정관리에 넘겨졌다. 주인도 몇차례나 바뀌었다. 먼저 2003년 미국 론스타에 인수된 이후에는 상폐까지 당했다. 두번째 주인은 웅진그룹이었는데 2012년 모기업이 유동성 위기로 부도를 맞자 2016년 세번째 주인인 세운건설에게로 매각됐다.

당시 업계에서는 극동건설을 인수한 세운건설에게도 관심이 쏠렸다. 그도 그럴것이 건설업계에 잘 알려지지 않은 무명의 중소 건설사였고, 극동건설을 인수할 당시에는 "새우가 고래를 삼킨다"라는 얘기까지 나왔다. 세운건설은 극동건설보다 상대적으로 작은 회사임에도 2012년 금광기업에 인수한데 이어 남광토건과 극동건설 등 굵지의 건설사까지 연달아 인수하는 등 범상치 않은 영토확장에 나섰다. 즉 법정관리에 처한 건설사들을 싼 값에 인수하며 사세 확장에 나선 것이다.

세운건설은 기명철(개명 전 봉명철) 회장이 지난 1995년 전남 화순에서 설립해 현재도 화순에 본사를 두고 있다. 당시 직원은 40여명 안팎에 불과했다. 봉 회장은 2012년 금광기업을 인수한 후 금광기업 대표로 자리를 옮기고 세운건설은 비등기 임원으로 실질적인 경영권을 행사해왔다. 기명철 회장은 세운건설의 지분 30%를 보유하고 있으며 금광기업과 남광토건, 극동건설의 지분 일부를 들고 있기도 하다.

최근에는 극동건설이 DL그룹 출신을 속속 영입하며 연이어 공공 및 민간건축부문에서 수주 낭보를 울리기도 했다. 이전에도 2017년 8월 임정 전 고려개발 토목사업본부장이 극동건설 대표이사로 부임했었고 이듬해 7월에는 송범 전 대림C&S대표이사가 극동건설 대표이사직을 맡은 바 있다. 극동건설 계열사에도 DL그룹 출신들이 속속 모여들고 있었다. 관계사인 남광토건 대표이사를 역임한 김근오 전 대표도 DL이앤씨 출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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