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⑤ 제1권 7~8행

[배철현의 테마 에세이|<바가바드기타>] ⑤ 제1권 7~8행

등록 2021.02.01 10:54

“당신은 두 번 태어나셨습니까?”

인간은 두 번 태어난다. 한 번은 부모를 통해 육체를 지닌 존재로 ‘우연히’ 태어나고 다른 한 번은 스승을 통해 정신적인 존재로 ‘거듭난다’. 인도의 경전 <바가바드기타>(BG)는 인간이 영적인 존재로 태어나기 위해, 어떤 과정을 거치는지 자세히 알려주는 인생지침서다. 그 지침서는 말과 글을 통해 알려준다. 우리가 사용하는 말과 글은 함축적이며 추상적이다. 한 공동체에서 오랫동안 사용하던 다양한 층위의 의미가, 상대방과의 소통을 위해 가능하면, 그 단어가 담고 있는 다양한 의미를 함축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개념을 귀로 들을 수 있는 음가를 지닌 ‘소리’로 정했고, 그 소리를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이미지를 ‘문자’를 통해 표현하였다. 특히 수많은 사람들의 인생지침서인 경전經典이 담고 있는 어휘는 상징일 수밖에 없다.

초기 그리스도교인들은 일련의 책들로 구성된 성경聖經을 삶의 기준이 되는 경전經典으로 수용하였다. 그 경전의 완결성을 증명하기 위해 신학자들은 그리스-로마 수사학자들의 전통을 수용하여, 자신들의 교리와 사상을 알레고리allegory를 통해 표현하였다. 알레고리는 저자나 연설자가 자신의 독창적인 생각이나 이야기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한 수단이다. 복잡하고 심오한 사상, 신이나 사후세계와 같이 일상의 경험을 초월한 개념을 설명하기 위해 일상의 가시적인 물건이나 사람을 원용하였다.

저자들은 알레고리를 이용하여 숨겨진 혹은 복잡한 의미를 일상적인 인물, 행동, 이미지 혹은 사건을 통해, 자신이 전달하려는 의중을 쉽게 전달하려고 시도한다. ‘알레고리’allegory라는 영어단어는 라틴어 ‘알레고리아’allegoria에서 유래했다. 이 라틴어 단어는 궁극적으로 ‘숨겨진 언어’라는 의미를 지닌 ‘알레고리아’ἀλληγορία(allegoría)에서 왔다. ‘알레고리아’는 또 다시 ‘다른 언어를 이용하여’라는 뜻을 지닌 ‘알로스’와 ‘시장에서 대중에게 장황하게 설명하다’라는 뜻을 지닌 ‘아고레우오’ἀγορεύω (agoreuo)의 합성어다.

예수는 길거리에 있는 일반인들에게는 모든 것을 비유로 말했으나, 제자들에게는 하늘의 비밀을 있는 그대로 전달했다. 그 이유는, 일반인들은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고,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하기” 때문이다. 예수의 함축적인 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청자가 예수와 같이 지적으로 영적으로 고양되어있어야 한다. 예수는 대중이 자신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기 때문에, 쉬운 예들을 이용하여 자세히 진리를 선포하였다.

이탈리아의 문학 단테는 중세 신학자들의 네 가지 경전해석 전통을 이어받아 자신의 저작에 적용하였는데 그는 <칸그란데 델라 스칼라CanGrande della Scala에게 보낸 편지>에서 자신의 이야기는 ‘다의多義’적이며 다음 네 가지 층위의 의미를 담고 있다고 주장하였다. 네 가지 층위는 다음과 같다.

첫째, 축자적인 의미: 단어나 문장의 표현이 실제 일어난 사건에 대한 객관적인 표현이다.
둘째, 역사적 혹은 정치적인 의미: 이야기는 그 이야기가 발생한 사회에서 역사적으로 그리고 정치적으로 숨겨진 의미가 있다.
셋째, 은유적이며 도덕적인 의미: 나와는 상관이 없는 다른 사람의 이야기가 아니라, 인간이 도덕적으로 어떤 행위를 해야 하는지 알려 준다.
넷째, 종말론적인 의미: 인생의 궁극적인 목적이 무엇인가를 묻는 장치다. 내가 오늘을 인생의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살아가는데 도움이 되는 혜안이다.

<바가바드기타>BG는 친족간의 전쟁이라는 실제 일어난 축자적인 의미나 정치적인 함의를 찾을 수도 있다. 그러나 BG가 오늘날까지 우리에게 전해 내려온 이유는, 이 이야기가 담고 있는 은유성과 적절성 때문이다. 친족과 투쟁하고 심지어 상대방을 살해해야만, 내가 생존할 수 있는 처절한 상황을 담고 있는 이 전쟁이야기는 실제로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 살아보겠다는 인간에게 시의적절하기 때문이다. BG를 단순히 과거에 한 번 일어난 이야기로만 여기는 것은, BG가 담고 있는 사상의 핵심을 이해하지 못하고, 그 겉모습만 보는 것이다.

BG는 인간의 심리적이며 정신적인 투쟁과 극복의 과정에 관한 이야기다. 인간이 자신에게 집중하여, 발견해야 할 자기-자신 탐색에 몰입하지 못하면, 그(녀)는 이내 타인이 가진 물건을 부러워하고 그것을 폭력으로 탈취하기 위해 전쟁을 벌인다. 판다바스의 왕, 드리타라슈트라의 맏아들인 두르요다나는 자신이 소유하고 있는 탁월한 장수들과 무기를 가지고 아르주나가 이끄는 칸다바 군대를 무너뜨릴 수 있다고 확신한다.

두르요다나는 자기 휘하에 있는 장군들을 한 명 한 명 나열하여 이들이 얼마나 강력하지 자랑하기 시작한다. <바가바드기타>(BG) 1권 7행 산스크리트어 원문 음역과 그 문장에 대한 직역과 의역은 다음과 같다:

(7행)
asmākaṁ tu viśhiṣhṭā ye tānnibodha dwijottama
아스마캄 투 비쉬슈따 에 탄니보다 드위조타마
nāyakā mama sainyasya sanjñārthaṁ tānbravīmi te
마야카 마마 사인야스야 산즈나르탐 탄브라비미 테

(직역)
“두 번 태어난 자들 가운데 최고인 자여!
우리의 군대 가운데 가장 뛰어난 장군들에 관해 들어 보십시오!
제가 그들에 관한 정보를 제가 말하겠습니다.”

(의역)
“두르요다나는 쿠루들판에서 아르주나 군대가 정렬한 모습을 가만히 보고, 자신의 참모이자 스승인 드로나에게 말을 건다. 드로나는 인간이 치우칠 수 있는 나쁜 성향과 좋은 성향, 즉 습관을 형성시키는 교관이다. 두르요다나는 아르주나 군대의 장수들을 살펴본 드로나에게 다음과 같이 말한다:
”오, 두 번 태어난 자들, 즉 브라만, 크샤트리야 그리고 바이샤 가운데 가장 훌륭한 자여!
물질적인 욕망의 상징인 나, 두르요다나가 당신을 위해 내 군대의 가장 뛰어난 장군들에 관해 알려드리겠습니다. 내 욕망의 군대가 지혜의 군대를 절멸시키기 위해 들판에 나열했습니다.”


드로나는 전쟁터에서 직접 싸우는 장군이 아니라, 전술을 제시하는 책사다. 그는 두르요다나가 이끄는 카우바라 군대의 움직임을 지휘한다. 누구도 신뢰하지 못하는 두르요다나는 드로나의 충성을 의심한다. 그는 드로나를 ‘두 번 태어난 자들 가운데 최고’라고 말한다. ‘드위조타마’dwijottama는 ‘두번 태어난’이란 의미를 지닌 ‘드비자’dvija와 ‘최고’라는 의미를 지닌 ‘웃타마’uttama의 합성어다.

드비자는 인간의 본성에 관한 중요한 내용을 담고 있다. 인간은 두 번 태어난다. 한번은 부모를 통해 육체를 지닌 존재로 태어나고, 다른 한 번은, 자기 수련을 통해 영적으로 태어난다. 고대 인도인들은 일정한 나이가 되면 부모를 떠나 우주와 삶의 지혜가 담겨있는 베다 공부를 통해 ‘통과의례’를 거쳐 새로운 인간으로 변모한다.

‘드비자’는 또한 인도 카스트 제도의 상위 세 단계, 즉 사제와 스승의 계급인 브라만, 전사계급인 크샤트리야, 그리고 상인 계급은 바아샤를 지칭하는 용어도 사용된다. 사람은 사회 안에서 자신에게 맡겨진 고유한 임무를 시작할 때 새롭게 태어난다. 이들은 ‘우파나야나’upanayana라는 통과의례에 참가하여 왼쪽 어깨에서 오른쪽 엉덩이 쪽으로 거룩한 실을 맨다. 이 줄은 영적으로 다시 태어나기 위한 탯줄이다. 인간은 모태에서 나오면서, 탯줄을 감고 태어난다. 그 탯줄을 잘라야 비로소 신체적으로 독립적인 존재가 된다. 인간은 이 의례를 통해, 자신의 둘러싼 정신적이며 영적인 환경으로부터 자신을 분리하여, 자신에게 몰입하는 훈련을 통해, 이 탯줄을 절단하여 영적으로 자유로운 인간으로 다시 태어나기 때문이다. 당신은 한번 태어나 그 상태로 그렇게 사십니까? 아니면, 정신적으로 다시 깨어나 새로운 인간으로 사십니까?

성 어거스틴의 회심, 이탈리아 르네상스 화가 프라 안젤리코 (1395-1455) 템페라, 1435, 21.8 cm, 프랑스 북서부의 항구도시 셰르부르 옥트빌에 위치한 토마-장리 미술관성 어거스틴의 회심, 이탈리아 르네상스 화가 프라 안젤리코 (1395-1455) 템페라, 1435, 21.8 cm, 프랑스 북서부의 항구도시 셰르부르 옥트빌에 위치한 토마-장리 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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