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철현의 테마 에세이|<바가바드기타>] ⑲ 제1권 31행-34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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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자신을 극복하실 수 있습니까?”

사람은 두 번 태어난다. 한번은 부모를 통해 우연히 육체를 지닌 존재로 태어난다. 육체 안에는 부모와 학교를 통해 다시 태어날 정신이 있다. 정신수련은 자기중심일 수밖에 없는 본능적인 이기심에서 탈출하여, 타인의 입장에서 세상을 보려는 시도다. 배움에는 두 가지가 있다. 자신의 이기심을 강화하려는 배움과 자신을 무아 상태로 진입시키려는 배움이다. 전자의 경우, 배우면 배울수록 이기적인 욕심 덩어리가 되어 자신뿐만 아니라, 자신이 속한 공동체에 해를 끼친다. 후자의 경우, 자신과 타인 모두를 위한 절묘한 지점을 발견하여, 그것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친다.

예수는 제자들에게 말한다. 자신의 제자가 되기 위해서는, 자기를 부인하고 자신이 순교할 수 있는 숭고한 가치, 즉 십자가를 어깨에 걸머지고 따르라고 명령한다. ‘자신을 부인 한다’라는 의미는 무엇인가? 이 문장에서 ‘자기’란 자신뿐만 아니라 자신을 둘러싼 일가친척一家親戚들이다. 예수의 제자들은 모두 가족을 떠나 새로운 가족 공동체를 만들었다. 그것이 ‘교회’의 시작이다.
유대교, 그리스도교, 이슬람교의 조상이라고 일컫는 아브라함도 위대한 신앙여정을 통해, 자신도 몰랐던 자신을 발견하기 위해, 일가친척을 떠났다. <창세기> 12장 1절에서 신은 아브라함에게 ‘고향, 아버지 집, 그리고 일가친척’을 떠나 자신이 지시할 미지의 장소로 떠나라고 명령하였다.

아르주나도, 요가수련을 하면서 그런 고민에 빠진다. 아르주나에게 고향, 아버지, 그리고 일가친척은 그를 안전하게 보호해주고 삶의 기쁨을 가져다주는 원천이다. 크리슈나는 이 혈연관계를 정신적으로 제거하지 못하면, 요가의 궁극적인 목적인 자유, 즉 해탈을 경험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한다.

전쟁터에 나간 아르주나는 큰 고민에 빠졌다. 자신이 속한 판다바 군대와 그의 적인 카우바라 군대는 가까운 친척간이기 때문이다. 아르주나에게 카우바라 군대를 섬멸하는 행위는, 자신을 살해하는 어리석은 자멸이기 때문이다. <바가바드기타>에서 전개되고 있는 내용은 역사적인 사건이 아니라 인간 마음속에 일어나는 선과 악의 대결, 이기심과 이타심의 갈등, 오래된 자아와 새로운 자아의 줄다리기를 심리학적으로 표현하였다. 그것은 모든 인간으로 하여금 과거로 돌아가게 하려는 유혹이다.

아르주나는 적이 된 자신의 친족과 싸워 그들을 전멸시켜야 하는 운명을 수용할 수 없었다. 그것은 더 큰 화를 불러오는 불길한 징조이며 불운이기 때문이다. 다음은 <바가바드기타> 제1권 31행-32행의 번역이다:

nimittāni ca paśyāmi
니미타니 차 파수야미
viparītāni keśava
비파리타니 카샤바
na ca śreyo ’nupaśyāmi
나 차 슈레요 ‘누파슈야미
hatvā svajanam āhave
하트바 스바자남 아바베


(직역)
“저는 불길한 징조를 봅니다, 오, 머리카락이 아름다운 자여!
저는 전투에서 나의 동족을 살해하는 것에서 행운을 보지 못합니다.”

(번역)
“오, 머리카락이 아름다운, 크리슈나여! 저는 이 전투에서 불길한 징조를 봅니다.
저는 이 전투에서 내가 생존하기 위해 동족을 살해해야합니다.
동족상잔에 무슨 행운이 있겠습니까?”



na kāṅkṣe vijayaṁ kṛiṣṇa
나 칸크세 비자얌 크리슈나
na ca rājyaṁ sukhāni ca
나 차 라즈얌 수카니 차
kiṁ no rājyena govinda
킴 노 라즈에나 고빈다
kiṁ bhogair jīvitena vā
킴 보카이르 지비테나 바

(직역)
“저는 승리를 원하지 않습니다. 오, 크리슈나여! 왕국도 행운도 원하지 않습니다.
우리에게 왕국이 무엇입니까? 오, 황소를 찾는 자여! 쾌락과 심지어 삶이 무엇입니까?“

(번역)
“오, 크리슈나여! 저는 이 전투에서 승리를 원하지 않습니다. 전투에 승리하여 장악할 왕국이나 그것이 가져다줄 물질적인 행운도 원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동족을 무찔러 얻는 왕국을 가지고 무엇을 할 수 있습니까? 우리가 획득한 쾌락, 심지어 인생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바가바드기타> 제1권 31행과 32행을 타인에 대한 연민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 구절은 인간의 마음속에 일어나는 심리적이며 영적인 싸움이다, 아르주나는 오랜 요가 수련을 통해, 자기절체와 자기극복의 경지에 이르렀다. 그러나 해탈을 위해서는 그 자신과 그 자신의 일가친척으로 상징되는 이기심과 그것을 보장하는 확대된 이기심으로부터 자유롭게 되어야한다.

전쟁터에서 적으로 만난 아르주나의 일가친척은, 심리적으로 그를 옭매고 있는 과거라는 끈이다. 이 끈을 온전히 절단해야. 이루즈나는 한 집안에서 태어난 개인이 아니라, 모든 인간의 표상이 된다. 그가 적으로 만난 친족과 싸우기를 주저하는 이유는, 그들이 아르주나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아르주나에게 이 전투는, 인간이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가치들, 즉 왕권, 쾌락, 그리고 행운을 차버리는 어리석은 행위였다. 그는 <바가바드기타> 제1권 33행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yeṣām arthe kāṅkṣitaṁ no
예샴 아르테 칸크쉬탐 노
rājyaṁ bhogāḥ sukhāni ca
라즈얌 보가흐 수카니 차
ta ime ’vasthitā yuddhe
타 이메 바스티타 윳데
prāṇāṁs tyaktvā dhanāni ca
프라남스 트약트바 다나니 차

(직역)
“우리가 누구를 위해서 왕권, 쾌락, 그리고 행운을 원합니까?
그들은 여기에, 자신들의 목숨과 부를 버리고, 전투를 위해 정렬했습니다.”

(번역)
“우리는 궁극적으로 누구를 위해서, 왕권, 쾌락 그리고 행운을 쟁취하려 애를 씁니까? 그들은 자신들이 일생을 두고 쌓아온 목숨과 부를 버리고, 우리와 전투를 위해, 이 벌판에 정렬했습니다.”


아르주나가 카우바라 군대와 싸우지 못하는 이유를 <바가바드기타> 제1권 34행에서 말한다. 그들은 아르주나를 낳아주고 키워준 일가친척이다.

ācāryāḥ pitaraḥ putrās
아차르야흐 피타라흐 푸트라스
tathaiva ca pitāmahāḥ
타싸이바 차 피타마하흐
mātulāḥ śvaśurāḥ pautrāḥ
마툴라흐 스바슈라흐 파우트라흐
śyālāḥ sambandhinas thatā
슈얄라흐 삼반디나스 싸타

(직역)
“선생들, 아버지들, 아들들 그리고 할아버지들입니다.
외삼촌들, 장인들, 손자들, 사촌 형제들, 그리고 다른 친족들입니다.”

(번역)
“이 사람들은 우리를 훈련시킨 선생들, 누군가의 아버지들, 아들들, 그리고 할아버지들입니다. 그들은 누군가의 외삼촌들이고, 장인들이며, 손자들, 사촌형제들, 그리고 다른 친족들입니다.”


아르주나는 깊은 고민에 빠졌다. 자신을 지금 존재하게 한, 스승, 부모, 일가친척들과 전투를 치러야 하기 때문이다. 이 전투는 자신과 전혀 상관이 없는 집단에 대항하는 전투보다 훨씬 힘들다. 왜냐하면 자신과 싸워, 자기를 정신적으로 살해해야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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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브카드네자르>
영국 화가-시인 윌리엄 블레이크 (1757–1827)
컬러 프린트, 잉크, 수채화, 1805, 54.3 cm x 72.5 cm
런던 테이트 브리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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