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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화(昇華) ⑧ 소명

[배철현의 테마 에세이]승화(昇華) ⑧ 소명

등록 2019.08.20 10:22

승화(昇華) ⑧ 소명 기사의 사진

대한민국이 선진국으로 진입하기 위한 가장 확실한 방법이 있다. 대한민국을 구성하는 국민 한명 한명이 선진적인 인간이 되는 것이다. 애벌레가 고치 안에서 일정한 시간을 보낸 후에 나비가 되듯이, 인간은 과거의 자신을 직시하고 개선하기 위해 자신이 마련한 고치에서 변신을 시도해야한다. 그 변신은 정신적이며 영적인 개벽이다. 필자는 그 개벽을 ‘승화’라고 부르고 싶다. ‘더 나은 자신’을 모색하는 여덟 번 째 글의 주제는 소명(召命)이다.


소명(召命) ; 나를 가장 나답게 구별되게 만드는 절대가치

세상에는 두 종류의 인간이 있다.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아는 인간과, 자신이 해야 할을 ‘아직’ 모르는 인간이다. 전자가 매일 아침 눈을 뜨는 이유는, 그날 저녁까지 자발적으로 해야 할 일이 있기 때문이다. 그 일은 대한민국이라는 공동체 안에서 그(녀)만이 할 수 있는 고유한 임무다. 후자는 매일 아침 ‘마지못해’ 눈을 뜬다. 그는 하루세끼 연명하기 위해 직업을 선택했다. 남들이 시킨 일을 해야 하기 때문에 신이 나지 않는다. 혹은 남들이 좋다고 하는 직장에 취직하기 위해, 취준생이거나, 게으름이 주인이 되어 핸드폰 동영상만 하루 종일 바라보며 댓글을 다는 방콕족이다. 자신만의 할 수 있는 일, 아니 자신의 최선을 유발하는 일을 찾은 사람은 언제나 늠름하고 행복하다. 그는 그런 일을 하면서 자신도 모르는 천재성을 발견하고 몰입할 것이다. 그 몰입이 그를 독보적인 인간으로 변모시킨다.

나는 오래전부터 성서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변신에 매료되었다. 그들은 무명에서 유명으로, 범인에서 위인으로 변화한 사람들이다. 그들을 나비의 변천과정을 통해 설명하자면, 애벌레에서 나비로 변신한 자들이다. 그들이 한 순간에 애벌레에서 나비로 변신할 수 없다. 이 사이 중요한 간극이 존재한다. 우리는 이들이 초자연적인 경험을 통해, 한 순간에 위대한 인간이 된 것처럼 착각한다. 모세는 양떼를 몰다, 더 이상 연소되지 않는 신기한 가시덤불을 목격했으며, 사무엘은 신전에서 잠을 자다가,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신의 음성을 들었고, 바울은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신의 음성을 들었다. 이런 파격적인 경험은 그들을 예상 할 수도 없었던 미지의 세계로 진입시켰다. 이 짧지만 강력한 경험은 그들에게 다가올 역경을 충분히 극복할 수 있는 힘을 선사하였다.

인생의 근본적인 변화는 오랜 준비와 정성이 만들어내는 예술이다. 그 예술이란 묘목苗木 느티나무가 오랜 세월을 견디고 단련하여, 인간에겐 그늘을, 새들에겐 보금자리를 선사할 늠름한 느티나무로 변신하는 과정이다. 성서의 영웅들이 신의 목소리를 들은 이유는, 그 목소리를 들으려고 준비準備했기 때문이다. 모세는 동족 히브리인을 학대하는 이집트인을 살해하고, 아무도 살지 않는 사막에서 40년간 살인자-도망자로 인고의 삶의 살았다. 40년이란 스승은 그에게 자연의 미세한 소리뿐만 아니라, 자신의 심연에서 흘러나오는 양심의 소리를 감지할 수 영민함을 선사하였다. 모세는 자신의 마음속에서 영원히 꺼지지 않는 인생의 임무를 발견한 것이다. 범인들이 넘어갈 수 없는 터부의 공간, 그전에 그 누구도 들어가 본적이 없는 인간 마음 속 깊이 자리 잡은 심연에 진입하여 신과 대면하였다.

소년 사무엘은 고대 이스라엘의 초대 왕들인 사울과 다윗을 임명한 구루이며 예언자다. 그는 어려서부터 출가하여 실로에 있는 성소에서 사제와 함께 수련하였다. 스승 엘리의 지도하에, 그는 깊은 묵상默想과 청취聽取를 연습해왔다. 사무엘은 칠흑과 같은 고요한 밤에 누군가 그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를 듣는다. 스승 엘리에게 달려갔지만, 스승은 그를 부르지 않았고 말한다. 엘리는 들을 수 없지만 사무엘은 들은 소리는, 사무엘의 마음속 깊은 곳에서 나오는 소리였다. 귀로 들을 수 있는 소리가 아니라, 마음의 귀로 들을 수 있는 미세한 침묵의 소리다. 자신의 마음에 귀를 기울여야 들을 수 있는 소리다. 사무엘이 그런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이유는, 세상소리가 들여오지 않는, 함석헌 선생이 말한 ‘은밀한 골방’을 가졌기 때문이다.

바울은 유대문헌뿐만 아니라 그리스와 로마 사상에도 정통한 학자였다. 그는 오랜 세월 경전과 고전을 연구하며, 마음의 밭을 개간하였다. 그는 자신을 사로잡을 만한 위대한 스승을 찾고 있었다. 바울은 당시 예수의 부활을 믿어, 자신이 속한 유대인 사회에 혼란을 야기한 사람들을 체포하기 위해 상업도시 다마스쿠스로 가던 길이었다. 바울은 그 여정 내내, 눈에 보이지도 않는 사랑이라는 가치를 위해 극형을 당한 예수라는 인물을 곰곰이 상상해보았다. 바울은 갑자기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신의 음성을 듣고 놀라, 타고 가던 말에서 떨어져 장님이 되었다. 바울이 이전에는 남들이 기록한 문헌을 읽었지만, 이제부터는 자신의 심장에 새겨진 신의 명령을 경청하는 자가 되었다. 그는 오늘날 그리스도교라는 종교의 초석을 다졌다.

인간이 자신의 삶을 뒤돌아볼 여유가 있다면, 자신만이 갈수 있는 ‘길’을 찾아 들어서야한다. 그러기 위해, 그 길로 들어서라는 ‘소명召命’과 마주쳐야한다. 만일 그가 그 소리를 듣지 못한다면, 인생이란 마라톤에서 목표지점을 상실한 것과 마찬가지다. 누가 그에게 “당신은 왜 뛰고 있습니까?”라고 묻는다면, 그는 “다른 사람들이 뛰고 있기 때문에 저도 뜁니다”라고 대답할 것이다. 남이 정해놓은 목표물을 향해 뛰는 행위는 그 자체가 지옥이다. 신명, 보람, 자부, 최선이 그를 떠난 지 오래다. 게으름, 눈치, 대충, 그리고 가끔 일탈이 그의 인생목표다. 그러나 소명을 들은 자는, 마라톤 출발선상에서 출발을 알리는 총성을 들은 자와 같다. 지옥의 20km지점이 와도, 그는 자신의 뇌에서 분비되는 도파민의 도움으로 거뜬히 42.195km라는 마라톤을 완주할 것이다.

소명은 그 사람의 인격이며, 소명은 바로 그 사람이다. 소명은 내가 오늘 여기에 사는 존재이유다. 소명을 듣지 못한 자는, 저 하늘위에 떠 있는 풍선과 같다. 바람이 부는 대로 이리저리 나부끼다가 이내 바람이 스스로 빠져 사라지고 말 것이다. 그러나 소명을 소유한 자는 다르다. 자신이 모든 것을 기꺼이 희생할 수 있는 한 가지를 가진 자다. 소명은 권력보다 강력하고 돈보다 값비싸고 목숨보다 귀하다. 소명을 알고 행동하는 자는, 소명을 위해 권력, 부, 그리고 목숨도 초개처럼 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완수해야할 임무가 있는 사람에겐, 삶의 시험과 역경은 오히려 도움이들이다.

그것들은 그의 소명을 더욱 굳건하게 만들어 주는 조련사이기 때문이다. 소명이 없는 사람은, 방향키가 없는 배와 같다. 인생이라는 망망대해로 항해를 시작했지만, 방향키가 없어 파도가 치는 대로 이리저리 유랑하다가 암초에 부딪혀 난파할 것이다. 만일 우리에게 소명이 없다면, 인생은 고해이며 고생이다. 극히 일부의 사람들만이 어린 시절 자신의 소질을 발견한다. 그는 자연스럽게 자신의 소질을 갈고 닦아 결국 일생의 과업으로 발전시킨다. 그러나 우리 대부분에게 소명은 우연히 등장하지 않는다. 소명은 오랜 시간 그것을 알기 위해서, 이것저것을 알아보고 시행착오를 겪는 자에게 슬그머니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는 뜻밖의 손님이다. 역사에 큰 족적을 남긴 인물들의 한결같은 특징은, 그들 모두 분명한 소명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그들은 그 소명을 자신의 목숨처럼 지키고 보호하고 발전시켰기 때문에 위인이다.

그리스 철학자 소크라테스는 그 자신에게 해가 되는 일을 하지 못하도록 도와주는 특별한 감각을 언급하였다. 그는 이 감각을 그리스어로 ‘다이모니온’δαιμόνιον이라고 불렀다. 소크라테스는 다이모니온(줄여서 다이몬)을 목소리로 들었다. 영국 소설가 러디어드 키플링은 다이몬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당신의 다이몬이 등장하면, 이성적으로 생각하지 마십시오.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다이몬을 가만히 기다리십시오. 일단 오면 복종해야합니다.”

다이몬은 내 마음 속에 존재하는 또 다른 1인칭 혹은 3인칭의 목소리다. 심리학자 칼 융은 천재를 이렇게 정의한다. “천재는 자신의 다이몬을 분명히 인식하고 자신에게 주어진 임무에 온전하게 몰입하는 자다.” 우리 대부분은 소명을 무의식 안에 깊숙이 감금하고 방치한다. 편리와 안정, 그리고 타인으로부터의 인정을 위한 삶을 사는 사람들에게 다이몬의 입은 봉쇄되었다. 우리가 그 존재를 의식적으로 인정하고 다이몬이 등장하기를 간절히 원한다면, 다이몬은 우리의 무의식 안에서 깨어날 수 있다. 소명은 사회적인 인정을 받기 위한 안달이 아니라, 한 개인을 가장 그 개인답게, 가장 구별되게 만드는 절대가치다. 그 가치는 환희와 보람을 선물한다.

어떻게 나는 인생의 소명을 발견할 수 있는가? 우리가 우리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분야를 탐색하고 실험하는 매일 매일의 시도와 연습을 통해서만 접근가능하다. 오랜 시간이 지나면서 우리는 자신의 삶에 의미를 부여하는 일련의 활동들에 집중할 수 있다. 우리를 자연스럽게 움직이는 진정한 열정은 오랜 수련의 결과다. 우리가 어떤 분야에 정성스런 열정이 없다면, 그 분야에 오래 머무를 수 없을 것이며, 끝없는 추구가 불가능하다. 그런 추구를 시작할 때, 다이몬의 목소리는 희미하다. 우리가 올바른 길에 들어섰는지, 다이몬은 확실하게 말해주지 않는다. 그러나 이 불확실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여전히 자신이 정한 루틴을 반복해야한다. 다이몬은 자신의 소명을 찾기 위해 매일 루틴을 반복하는 자에게 미세한 소리로 말을 걸 것이다.

의도된 그리고 정성스런 반복은 소명을 확실하게 깨닫기 위한 첫 번째 단계다. 그는 자신이 선택한 분야에 권위자가 되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기꺼이 바친다. 권위는 자신이 선택한 분야에 투여한 의도적인 몰입의 시간에 비례하여, 그 정도가 결정된다. 독일 철학자 니체는 무명시절 자신의 머리에 떠오르는 영감들을 간략한 이야기 형식으로 수첩에 적기 시작하였다. 그는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이란 책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저는 이런 다양한 연습을 십년동안 지속했습니다. 그런 후, 그 안에서 창작된 것을 대중의 눈앞에 내놓을 수 있었습니다.” 십년동안, 혹은 오랜 시간동안 자신이 선택한 루틴을 지속할 수 있는냐가 문제다. 그 수련은 우리의 시간, 돈, 그리고 안락의 희생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만일 이 연습을 멈춘다면, 그는 소명을 찾는 여행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한다. 그러기에 인생은 너무 짧다. 만일 어떤 사람 자신의 다이몬이 요구한 길로부터 이탈한다면, 그에겐 기쁨도 없고 삶의 환희도 없다. 내가 복종해야할 나만의 다이몬은 무엇인가? 나는 내 마음 속에서 미세하기 들이는 그 목소리를 감지하는가? 나는 소명에 복종하는가?

<폭풍 속에 있는 선박 ‘마리아’> 러시아 낭만주의 해양 화가 이반 아이바조프스키 (1817–1900), 유화, 1892, 224 cm x 354 cm, 크리미아반도 패도시아 국립 아이바조프스키 미술관<폭풍 속에 있는 선박 ‘마리아’> 러시아 낭만주의 해양 화가 이반 아이바조프스키 (1817–1900), 유화, 1892, 224 cm x 354 cm, 크리미아반도 패도시아 국립 아이바조프스키 미술관

<필자 소개>
고전문헌학자 배철현은 미국 하버드대학에서 셈족어와 인도-이란어를 전공하였다. 인류최초로 제국을 건설한 페르시아 다리우스대왕은 이란 비시툰 산 절벽에 삼중 쐐기문자 비문을 남겼다. 이 비문에 관한 비교연구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인류가 남긴 최선인 경전과 고전을 연구하며 다음과 같은 책을 썼다. <신의 위대한 질문>과 <인간의 위대한 질문>은 성서와 믿음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를 다루었다. 성서는 인류의 찬란한 경전이자 고전으로, 공감과 연민을 찬양하고 있다. 종교는 교리를 믿느냐가 아니라, 타인의 아픔을 공감하고, 연민하려는 생활방식이다. <인간의 위대한 여정>은 빅히스토리 견지에서 '인간이란 무엇인가?'를 추적하였다. 이 책은 빅뱅에서 기원전 8500년, 농업의 발견 전까지를 다루었고, 인간생존의 핵심은 약육강식, 적자생존, 혹은 기술과학 혁명이 아니라 '이타심'이라고 정의했다. <심연>과 <수련>은 위대한 개인에 관한 책이다. 7년 전에 산과 강이 있는 시골로 이사하여 묵상, 조깅, 경전공부에 매진하고 있다. 블로그와 페북에 ‘매일묵상’ 글을 지난 1월부터 매일 올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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