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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어디에도 없는 ‘CEO 규제법’에 금융권 분노

[금융지주 회장 임기 제한 논란]세계 어디에도 없는 ‘CEO 규제법’에 금융권 분노

등록 2020.09.25 16:31

정백현

  기자

與, ‘CEO 장기집권 금지’ 금융지주회사법 개정 추진의원 기득권 철폐는 미흡···금융권 힘빼기는 초고속?정부와 무관한 금융사 인사 개입은 경영 자율성 침해“현행 CEO 선임 절차 감안한다면 과잉 입법” 비판금융권 “CEO 장기 연임, 역기능보다 순기능 많다”

지난 7월 23일 오전 서울 세종대로의 한 음식점에서 은성수 금융위원장과 5대 금융지주 회장단 간의 비공개 조찬 간담회가 이뤄졌다. 사진 왼쪽 아래부터 시계 방향으로 이세훈 금융위 금융정책국장, 조용병 신한금융지주 회장, 김정태 하나금융지주 회장, 김광수 농협금융지주 회장, 손태승 우리금융지주 회장, 은성수 금융위원장, 윤종규 KB금융지주 회장. 사진=금융위원회 제공지난 7월 23일 오전 서울 세종대로의 한 음식점에서 은성수 금융위원장과 5대 금융지주 회장단 간의 비공개 조찬 간담회가 이뤄졌다. 사진 왼쪽 아래부터 시계 방향으로 이세훈 금융위 금융정책국장, 조용병 신한금융지주 회장, 김정태 하나금융지주 회장, 김광수 농협금융지주 회장, 손태승 우리금융지주 회장, 은성수 금융위원장, 윤종규 KB금융지주 회장. 사진=금융위원회 제공

정치권을 중심으로 금융지주회사 회장의 임기를 6년으로 제한하려는 법안 발의 추진설이 흘러나온 가운데 세계적으로도 유례를 찾기 힘든 금융회사 CEO 대상의 과잉 규제가 등장하는 것이 아니냐는 비판이 금융권 안팎에서 봇물 터지듯 터져 나오고 있다.

특히나 그동안 숱하게 기득권 해체와 용퇴를 스스로 주장하면서도 단 한 번도 그 약속을 지키지 못했던 국회의원들이 국가 경제의 동맥과도 같은 금융회사를 상대로는 입법권이라는 권리를 발동해 옭아매려 한다는 지적이 많다.

25일 정치권에 따르면 김한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금융지주 회장의 임기를 최대 6년까지로 제한하는 금융지주회사법 개정안 발의가 준비되고 있다. 금융지주 회장 임기가 보통 3년인 것을 고려한다면 딱 한 번의 연임만 허용하겠다는 것이 해당 법의 주요 내용이다.

2001년 국내 1호 금융지주인 우리금융지주의 탄생 이후 6년 이상 CEO를 역임한 금융지주 회장은 고작 4명뿐이다. 라응찬 전 신한금융지주 회장, 김승유 전 하나금융지주 회장, 김정태 하나금융지주 회장에 이어 윤종규 KB금융지주 회장도 6년 이상의 임기를 보냈다.

각종 형태의 세습을 통해 재벌 일가의 영구적 소유와 경영으로 운영되는 민간 기업과 달리 금융회사는 특정한 소유주가 없다. 외국인 주주들이 회사 지배구조에서 절대다수의 힘을 갖고 있다.

또 경영 과정의 모든 의사결정에는 사외이사들이 포진된 이사회와 주주들의 선택이 반영되는 구조를 갖췄기에 CEO의 독단적 전횡도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런데도 정치권은 CEO 한 사람의 집권이 길어지면 조직이 정체되고 ‘제왕적 경영’에 나설 수 있다는 우려를 들어 해당 법을 만들고자 하고 있다.

금융권은 당연하게 반발하고 있다. 정부는 물론 정치인 누구도 지분을 갖고 있지 않은 민간 기업의 CEO 거취를 법으로 좌지우지하는 것은 초법적 발상이자 회장 선임의 권한을 쥐고 있는 이사회와 주주를 무시한 처사라는 것이 금융권의 중론이다.

국내 금융시장에서 운영되는 금융기관 중 법으로 CEO 임기를 제한한 곳은 산업은행, 수출입은행, 기업은행 등 정책금융기관 외에는 없다. 이들 기관은 모든 지분을 정부가 쥐고 있으므로 법으로 CEO의 임기를 제한할 명분이 충분히 있다.

그러나 민간 금융기관은 정부와 정치인의 지분이 단 1주도 없다. 과거 KB국민은행이 국책은행으로 운영된 시절이 있지만 완전 민영화 이후 무려 25년이 흘렀고 현재 예금보험공사가 지분을 보유 중인 우리금융지주도 정부가 내후년까지 지분을 매각할 계획이다.

결국 정부-정치권과 직접적 연관 관계도 없는 상태에서 명분도 없이 민간 금융회사의 경영진 임기를 강제로 제한하는 것은 경영의 자율성과 이사회·주주의 권리를 정면으로 침해하는 불손한 처사라는 지적이 있다.

정책금융기관을 제외한다면 국내 어느 실정법에도 민간 기업 대표이사의 임기를 법으로 제한받는 사례는 없다.

다만 사외이사는 연임 제한 조항이 있다. 올해 초 개정된 상법에 따라 한 회사에서 6년 이상 사외이사로 일할 수 없다는 조항이 생겼다. 사외이사의 지나친 연임이 이사회의 독립성을 훼손할 수 있다는 우려가 만들어낸 조항이다. 물론 이 조항도 상당한 논란거리다.

금융권에서는 금융지주 회장이 어떤 방식으로 선출되는가를 정치인들이 정확히 알고 있다면 이런 법안은 나오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국내 모든 금융지주는 이사회 내 소위원회로 임원후보추천위원회(임추위) 또는 회장후보추천위원회(회추위)를 두고 있다. 경영진이 될 후보를 고르고 육성하며 검증하는 조직이다.

과거에는 현직 CEO가 회추위원으로 참여한 사례도 있었지만 지난 2018년 ‘셀프 연임’ 논란을 겪으면서 현직 CEO의 회추위 개입을 금지하도록 규정을 바꿨다. 국가 법률이 아닌 각 금융지주의 내규를 고친 것이다. 회사 내규도 법률만큼 강제성과 영향력이 강하다.

회추위는 현직 CEO 임기 만료 수개월 전에 차기 회장 선임 계획을 발표하고 공정하고 다각적인 검증 과정을 거쳐 CEO 후보를 확정한다. 검증 과정에서는 경영 성과, 조직 안팎 평판, 미래 경영 비전 등을 꼼꼼히 따진다.

또 몇 차례의 검증을 거쳐서 CEO 최종 후보가 돼도 주주들이 선임을 거부한다면 CEO에 오를 수 없는 구조를 갖췄다. 다시 말해 회사에서 오랫동안 일했다고 하더라도 성과가 떨어지고 평판이 나쁘다면 현직 프리미엄을 가진 회장이라고 해도 연임이 어렵다.

이를 두고 “성과와 평판을 모두 갖춘 우수 CEO를 장기집권했다는 이유만으로 내보내야 한다면 기업의 성과와 무관하게 소유주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수십년째 경영권을 쥐고 있는 일부 재벌에는 왜 철퇴를 내리지 않는가”라는 볼멘소리가 금융권 안팎에서 커지고 있다.

금융권 관계자들은 가뜩이나 강력한 ‘겹겹이 규제’로 혁신을 꾀해야 할 금융 산업의 동력이 떨어지는 환경 속에서 오히려 정치권이 규제의 두께를 더 키우는 것은 시대에 역행하는 일이자 금융 산업을 도태시키는 일이라고 꼬집고 있다.

한 금융지주 고위관계자는 “1명의 CEO가 오랫동안 경영을 맡으면 역기능보다 순기능이 훨씬 더 많다”면서 “매번 회장이 정신없이 바뀌고 지배구조가 불안하다면 해외 투자자들이 국내 금융회사를 어떻게 보겠느냐”며 불편한 심경을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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