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금 2조 채운 대한항공, 송현동땅 매각 ‘급할 것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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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내식기판사업부 매각, 현금 8000억 유입
유상증자 현금 포함시 2조 자본확충 마무리
부지 매각 속도조절 가능···강경태세로 전환
재계도 대한항공 편, 협상 주도권 내준 서울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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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항공 서소문 사옥. 사진=이수길 기자 leo2004@newsway.co.kr
대한항공이 2조원 가량의 자본확충을 사실상 마무리 지은 가운데, 종로 송현동 부지 매각을 찬찬히 추진할 수 있게 됐다. 급할게 없어진 만큼, 더이상 송현동 부지 건으로 서울시에 휘둘리지 않게 됐다는 의미다.

31일 항공업계와 관련업계 등에 따르면 대한항공은 지난 25일 사모펀드 한앤컴퍼니와 기내식기판사업 영업양수도계약을 체결했다.

기내식기판사업에 대한 영업양수도 대금은 9906억원이다. 당초 시장에서 예상한 1조원 안팎의 금액에 부합하는 수준이다.
한앤컴퍼니는 신설법인을 설립한 뒤 기내식기판사업을 양도받게 된다. 대한항공은 향후 기내식과 기내면세품의 안정적 공급과 양질의 서비스 수준 확보를 위해 신설법인의 지분 20%를 취득할 계획이다. 거래 종결까지는 약 2~3개월이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

다만 실제 대한항공으로 유입되는 현금은 8000억원에 못 그칠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 2분기 기준 기내식기판 사업부 직원(기간제 포함)은 총 235명이다. 평균 근속연수와 연봉으로 추정한 총 퇴직금 규모는 약 300억원이다. 신설법인 지분 취득에 필요한 자금은 1900억원으로 계산된다.

대한항공이 앞서 지난 7월 단행한 유상증자로 확보한 현금 1조1269억원까지 고려하면, 연내 1조9000억원대의 자금을 마련할 수 있는 셈이다. 지난달에는 제주도 사택 매각을 완료하며 290억원 가량을 확보했다.

이에 따라 대한항공은 당장 급한 불을 끄게 됐다. KDB산업은행 등 국책은행은 지난 4월 대한항공에 1조2000억원 규모의 긴급 유동성을 지원하며 올해 안으로 1조5000억원, 내년 말까지 2조원 가량의 자본확충을 요구한 바 있다.

다시 말해, 유상증자와 사업부 매각으로 정부와 약속한 자본금을 모두 충당한 만큼 송현동 부지와 왕산레저개발 등 유휴자산 매각은 속도조절이 가능해질 것이란 관측이다.

서울 도심의 마지막 ‘노른자’로 불리는 송현동 부지 매각도 서두를 이유가 없다. 최소 5000억원으로 추산되는 이 땅은 대한항공이 가장 큰 노력을 기울이는 매각 대상이다.

하지만 서울시가 독단적으로 문화공원 조성 계획을 발표하면서 헐값 매각설이 제기됐다. 당장 유동성이 시급한 대한항공이 마지못해 시세보다 낮은 가격으로 송현동 땅을 내놓을 수 있다는 우려가 확산된 것이다. 당시 서울시가 제시한 매입가는 4671억원이고, 이를 2022년까지 나눠 지급하겠다고 밝혔다.

대한항공에 진지하게 매입 의사를 밝힌 기업은 5~6군데 정도로 알려졌다. 하지만 6월 실시한 예비입찰에는 단 한 곳의 원매자도 나타나지 않았다. ‘민간 매각이 이뤄질 경우, 개발 요구를 용인해주지 않겠다’는 서울시에 부담을 느낀 탓으로 풀이된다.


대한항공은 예비입찰이 끝난 직후인 6월12일과 이달 12일 두 차례에 걸쳐 국민권익위원회에 서울시의 일방적 공원화 강행 중단을 요구하는 고충민원과 의견서를 제출했다.

권익위는 20일 대한항공과 서울시 관계자를 불러 3자 대면 회의를 가졌지만, 이렇다 할 절충안을 찾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권익위는 다음달 1일 2차 중재 회의를 열 계획이지만, 합의점을 도출해낼지는 미지수다.

기내식기판사업부 매각이 확정된 이후 ‘을’의 위치에 있던 대한항공에서는 기류변화가 포착되고 있다. 대한항공은 지난 28일 서울시의 행위가 ‘위법성이 짙은 알박기’라는 격앙된 어조로 반격에 나섰다.

그동안 대한항공은 서울시를 직접적으로 비난하는 태도를 지양해 왔다. “서울시의 문화공원 지정 추진으로 대한항공의 연내 매각 계획은 무산될 가능성이 크다” “공원조성 청사진 없이 특별계획구역을 문화공원으로 용도변경하는 것은 수년 이상의 기간이 소요될 것이다” “권익위에 의견서를 제출하며 도움을 청한 것은 절차 위법성과 독단적 강행을 막기 위해서다” 등 호소에 가까운 입장문을 내왔다.

하지만 이번에는 “서울시의 문화공원 지정 절차는 국토계획법령을 명시적으로 위반했을 소지가 높고, 도시공원일몰제에 역행하는 처사는 문제가 있다”며 “사유재산인 송현동 부지의 실질적인 매각을 막는, 사실상 알박기”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또 이 같은 내용의 의견서를 권익위에 재차 제출했다.

대한항공의 태도 변화는 송현동 부지 매각의 시급함이 완화된 데서 비롯됐다는 해석이 나온다. 사업부 매각 계약 체결 이후에 나온 입장문이라는 점도 이 같은 추측에 무게를 더한다.

협상 주도권은 대한항공으로 넘어간 분위기다.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는 30일 배포한 의견서에서 “서울시의 송현동 부지 공원화 추진은 민간의 재산권을 정면으로 침해하는 것이고, 대한항공은 매우 억울한 상황”이라고 밝혔다.

경총이 개별 기업의 특정 사례에 대해 의견을 내는 것은 이례적이다. 그만큼 송현동 부지 갈등이 코로나19에 직격탄을 맞은 대한항공의 자구 노력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고 있다는 의미로 볼 수 있다.

재계 한 관계자는 “대한항공이 추가적으로 현금을 확보하지 못했다면, 송현동 부지가 서울시로 헐값에 넘어갔을 가능성이 다분”하다며 “대한항공 입장에서는 정상 매각 절차를 밟아 되도록 높은 가격에 부지를 처분하려고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세정 기자 s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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