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본 소프트뱅크가 소유한 영국 반도체 팹리스 업체 ARM이 매물로 나오면서 시장에선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움직임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ARM이 전 세계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 물량 중 95%를 설계하는 팹리스 업체로 삼성전자가 인수할 경우 즉시 반도체 시장 지각변동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11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소프트뱅크는 47조원 규모의 자금 확보를 위해 ARM 지분 매각을 검토 중이다. 블룸버그와 로이터통신 등 외신도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이 ARM 지분 인수 의사를 애플과 엔비디아에 타진했다고 보도했다. 손 회장은 2016년 320억달러(약 38조원)를 투입해 ARM을 인수했다. 당시 손 회장은 “바둑으로 치면 50수 앞을 내다보고 인생 최대의 베팅을 했다”고 말해 화제를 모았다. 현재 ARM 지분 75%는 소프트뱅크가 쥐고 있으며 25%는 자회사 비전펀드가 보유하고 있다.
시장에선 ARM 최초 설립을 주도한 애플에 시선을 돌렸지만 엔비디아에 좀 더 무게를 두는 분위기다. 그러나 미국 회사인 엔비디아가 ARM을 단독으로 사들이면 미·중 무역분쟁으로 가뜩이나 악화 일로를 걷는 중국이 독과점 문제를 제기할 가능성이 있다. 이 때문에 이런 알력다툼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삼성전자가 컨소시엄 형태로 ARM 지분 인수전에 뛰어들 것이란 예상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이 부회장과 손정의 회장의 친분이 두터운 것도 지분 인수 가능성에 힘을 싣고 있다. 이 부회장은 지난해 7월 손정의 회장의 방한 당시 같은 승용차를 타고 40여분간 동승하며 만찬장에 방문했다. 손 회장과 이 부회장은 평소에도 전화통화를 하는 사이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 부회장이 최근 반도체 초격차 전략 확장을 위해 지속해서 통 큰 투자를 단행했다는 점도 시장의 기대감을 키우는 요소다. 삼성전자는 다음 달 중으로 30조원 이상을 투입하는 경기도 평택캠퍼스의 세 번째 반도체 생산 라인 ‘P3’ 공장 착공에 들어갈 계획이다.
지난해 이 부회장이 내건 ‘2030년 비메모리(시스템반도체) 1위’ 목표를 위해 삼성전자와 ARM 설계 기반의 모바일 AP 등 지속적인 파트너십도 필수로 꼽힌다. 삼성전자가 올 상반기 기준 사상 최대인 약 113조원의 현금과 현금성 자산을 보유 중인 점도 ARM 매각과 연결되는 요소다.
다만 코로나19 국면에서 기업들이 현금성 자산을 우선시한다는 점과 삼성전자의 이런 현금성 자산 중 절반에 달하는 ARM 매각대금은 걸림돌이다. 결국은 삼성전자가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컨소시엄에 참여해 일정 부분 ARM 지분 매입을 할 것이란 주장이 설득력을 얻는 분위기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ARM의 기술력은 인정하지만 금액적인 측면과 수익적인 면 모두 매력적으로 보긴 힘들다”며 “삼성이 지분 참여에 투자한다고 하더라도 큰 금액은 아닐 것”이라고 분석했다.
소프트뱅크가 ARM 지분 매각으로 취득하려는 47조원대의 금액을 삼성전자가 전부 떠안지는 않을 것이란 예상이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ARM 관련해선 확인할 수 있는 내용이 없다”고 말을 아꼈다.
임정혁 기자 do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