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권력 해부④]‘구조조정 컨트롤타워’ 거듭난 산업은행

최종수정 2019-07-11 0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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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구조조정 이끌며 위상 강화
대우조선해양 민영화 주도하기도
‘대통령 경제교사’ 이동걸 입지에
정부 그늘 벗어나 독자행보 지속

그래픽=강기영 기자


“아시아나항공 매각에 대해선 산업은행에 포괄적 권한을 줬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5월 ‘제19차 한중일 재무장관·중앙은행 총재회의’ 참석차 방문한 피지에서 기자들과 만나 이런 말을 남겼다. 난처한 질문을 피해가려는 정치인 특유의 처세술이었겠지만 그의 발언은 분명 현 시점 대한민국에서 ‘기업 구조조정의 컨트롤타워’가 어디인지를 명확하게 가리키고 있었다. 산업은행 얘기다.
홍남기 부총리의 말에서 짐작할 수 있듯 2년 사이 금융·산업계 내에서 산업은행의 위상은 크게 높아졌다. 금호타이어 해외 매각과 STX조선 구조조정, 한국GM 자금 지원, 대우조선해양 민영화와 아시아나항공의 매각 추진 등 굵직한 현안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면서다. 특히 대우조선 매각과 같이 20여년간 끌어온 난제를 풀어내며 차츰 금융권 맏형으로서의 입지를 굳혀가고 있다.

◇‘대통령 경제 교사’에서 구조조정 책임자로=이처럼 산업은행이 기업 구조조정 현안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게 된 것은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과 무관치 않다는 게 업계의 전반적인 평가다. 현 정부 ‘실세’로 분류되는 인물이 수장으로 앉음으로써 더욱 과감한 의사 결정이 가능해졌고 업무 처리에도 속도가 붙었다는 분석이다.

실제 이동걸 회장은 지난 2017년 9월 취임한 금호타이어와 한국GM, 대우조선 등 구조조정 관련 핵심 이슈를 풀어내며 줄곧 화제를 몰고 다녔다. 앞선 몇 명의 회장이 쩔쩔맸던 사안을 2년도 채 지나지 않아 모두 해결했다는 데 강한 인상을 남겼다.

이는 김대중 대통령부터 노무현·문재인 대통령으로 이어지는 3대 민주 정부에서 활동했던 이동걸 회장의 독특한 이력과 관련이 깊다. 경제학자 출신인 그는 김대중 정부 땐 대통령비서실 행정관과 대통령자문 정책기획위원을 지냈고 노무현 전 대통령 시절엔 금융감독위원회 부위원장, 한국금융연구원장 등을 역임한 바 있다. 문재인 대통령 후보 시절엔 캠프에서 경제 대책을 담당했다. 이렇다보니 청와대는 물론 여당에서도 이동걸 회장에게 두터운 신뢰를 보내고 있다는 후문이다.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 게 지난해 평양에서 열린 제3차 남북 정상회담이었다. 당시 이동걸 회장은 한국 금융권 수장 중 유일하게 특사단에 이름을 올려 북한을 방문했다. 남북협력기금을 운영하는 쪽은 수출입은행인데 예상을 깨고 이동걸 회장이 자리를 채우자 세간에는 그의 영향력을 새삼 실감하게 됐다는 얘기까지도 나돌았다.

물론 이동걸 회장에게도 취임 초기엔 ‘낙하산’이란 꼬리표가 붙어다녔다. ‘대통령의 경제 교사’가 국책은행 회장에 발탁됐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약 2년이 지난 현재 그에게 이러한 수식어를 붙이는 이들은 무척 드물다.

◇정부 그늘 벗어나는 산업은행=정부의 전폭적인 지지에 힘입어 산업은행은 금호타이어 매각, 한국GM 지원, 아시아나항공 매각 등 주요 현안에서 차츰 제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표면적으로는 산업경쟁력 강화 장관회의를 거쳐 실행 방안이 확정되는 것처럼 보이나 그 모든 시나리오는 이동걸 회장의 머릿속에서 나온다는 게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실제로도 산업은행의 뜻대로 이뤄진 경우가 많았다. 박삼구 전 금호그룹 회장으로부터 금호타이어와 아시아나항공의 매각을 이끌어 낸 게 대표적이며 현대중공업과 지주사를 만든 뒤 대우조선을 넘기는 민영화 방식도 산은이 만들어낸 해법으로 알려져 있다. 현대상선엔 IT전문가가 필요하다는 이동걸 회장의 말대로 LG그룹 출신의 ‘전자맨’ 배재훈 전 판토스 대표가 CEO로 낙점됐다.

아울러 대주주와 모든 이해관계자가 고통을 분담해야만 금융 지원이 가능하다는 이동걸 회장의 철학은 구조조정을 수행하는 산업은행의 원칙으로 굳어졌다.

이는 과거와 대조적인 양상이다. 사실 산업은행이라는 조직은 공공기관이라는 특성상 방어적인 성격이 짙다. 정부의 관리를 받는데다 사업에 실패하면 관련 부서로 감사 등과 같은 불이익이 돌아오기 때문이다. 이에 내부에서는 가급적 정부의 방침을 따르는 게 안전하다고 보는 시각도 팽배하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산업은행은 정부의 정책 방향에 따라 조직이 합쳐졌다 쪼개지기를 반복하는 등 운명을 달리 해왔다. 일례로 2008년 6월 이명박 정부는 산업은행의 민영화 계획을 발표한 뒤 정책금융공사를 분리하는 등 작업에 착수했으나 2013년 박근혜 정부는 이 계획을 전면 백지화했다. 글로벌 투자은행(IB) 육성, 정책금융 기능 강화란 각각의 논리는 있었지만 정부가 산업계 전반에 영향력을 미치는 산업은행을 휘두르려 했음을 짐작케 한다.

전직 회장의 뒷모습도 아름답지 않았다. MB정부 시절의 강만수 전 회장은 지인회사에 특혜를 주도록 대우조선을 압박한 혐의로 구속됐고 박근혜 정부 때 수장인 홍기택 전 회장은 ‘서별관 회의 외압’ 발언 후 아시아개발은행(AIB) 부총재직까지 내려놨다. 지시에 따랐다는 홍 전 회장의 말은 그간 산업은행 수장이 정권 앞에서 얼마나 무력했는지를 보여주는 단면이다.

하지만 최근 산업은행은 정부의 그늘에서 벗어나 독자적인 행보를 이어가는 모양새다. 그 일환으로 기업의 구조조정과 매각 등을 전담할 자회사 ‘KDB인베스트먼트’도 꾸렸다. 구조조정 기능을 줄여 ‘혁신성장’ 지원에 매진하는 한편 시장 원리에 입각한 구조조정을 실현하겠다는 목표에 이동걸 회장이 구상한 조직이다. 이달에는 산업은행과 주식 인수 계약을 체결하며 대우건설의 매각 재개를 예고했다.

이와 관련 이동걸 회장은 지난해 9월의 간담회에서 “우리 경제의 위험요인을 모두 제거해야만 앞으로 나갈 수 있다”면서 “임기 중 구조조정을 마치겠다는 각오로 최선을 다하겠다”는 포부를 내비쳤다.

차재서 기자 sia0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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